염려없이 살려면
시편 23:1-6다윗은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언제 잡혀 죽을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 도망 다녀야 했고, 자녀들 간의 갈등으로 마음 아픈 일을 겪었으며,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생명의 위협까지 당했습니다. 그 누구보다 염려가 많을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시편 23편에는 염려가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다윗은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라고 고백합니다. 누가 보아도 불안하고 염려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다윗은 어떻게 염려 없이 살 수 있었을까요?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1. 내 속의 뿌리 깊은 염려
다윗의 고백은 인생 마지막 순간에 남긴 말이 아닙니다. 아직 살아갈 날이 많이 남아 있는 때에 한 말입니다. 곧, “앞으로 살아가는 모든 날 동안 나는 염려하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우상을 섬기게 된 것도 먹고 사는 문제, 즉 생계에 대한 염려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경고하셨습니다(신 11:16-17). 그러나 그들은 비를 내려 준다고 믿었던 바알, 그리고 다산을 준다고 여겼던 아세라에 마음을 빼앗겨 결국 하나님을 떠나고 말았습니다(겔 20:28). 나라가 멸망한 이유는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한 불신과 염려’ 때문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다르지 않습니다. 치열한 경쟁 사회 속에서 직장, 건강, 결혼, 자녀, 학업, 먹고 사는 문제 때문에 늘 염려하며 살아갑니다.
2.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
다윗이 염려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거나, 마치 깨진 그릇처럼 깨어진 삶을 경험하거나, 간절한 기도에 응답이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 “하나님은 선하시지 않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반대로 내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면 그때는 “하나님은 선하시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처럼 ‘내 욕망을 채워주는 우상’을 섬기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인자’는 룻기에도 등장하는 ‘헤세드’로,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을 뜻합니다. 하나님은 심판을 말씀하시면서도 늘 회개와 용서, 회복과 소망을 함께 약속하셨습니다. 다윗은 이를 “눈물 골짜기를 지나갈 때 샘물이 솟아난다”(시 84:6)고 표현했습니다. 내 뜻대로 되지 않아도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고 신뢰한다면, 우리 역시 다윗처럼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른다”는 고백을 할 수 있습니다.
3.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다윗은 마지막으로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라고 고백합니다. 이는 단순히 편안히 먹고 산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하나님과 늘 함께 살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의 표현입니다. 거의 마음은 역대상 15장에 잘 드러납니다. 다윗은 언약궤를 모셔올 때 왕의 옷을 벗고 베옷을 입었으며, 악기 연주에 맞춰 기쁨으로 춤추었습니다. 왕의 체면보다도 하나님의 임재를 기뻐하고 사모한 것입니다. 시편 마지막 구절,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만약 이어서 우리가 한 구절을 더 적는다면, 무엇이라고 고백하시겠습니까?
4. 개인 적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