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목사? 나쁜 목사?
우리 교회 앞 주차장에는 동네 분들이 차를 주차시켜 놓는 경우가 자주 있습니다. 요즈음은 각 집에 차들이 한두 대는 보통 있는 편이어서 집 근처에 차를 주차시키는 일이 매우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실제로 주일에 우리 성도들도 교회 근처에 차를 주차시키지 못하고 멀리 세워 놓고 걸어오시는 분들이 매주일 여러 분이 계십니다.
보통 때는 교회 앞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아도 특별한 일이 없는 한 허용을 해드리는 편입니다. 그러나 새벽기도 시간이나 수요저녁예배 시간, 주일예배 시간에는 다른 차들이 주차를 시키지 못하도록 합니다. 우리 성도들의 차를 주차시켜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주차시키는 일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라면서, 우리 성도들이 차를 주차시켜야 할 시간에 동네 사람들이 교회 주차장에 주차를 시켜놓는다면, 그것을 허용하는 것이 착한 목사가 되는 길일까요? 동네 사람들에게는 착한 목사라는 평을 받을지 모르지만, 우리 성도들에게는 담임목사로서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직무유기(?)가 될 것입니다.
오래 전의 일입니다. 다운교회에서 승합차를 마련하기 위해 중고차를 하나 구입하였습니다. 보통 새 차를 구입하면 구입한 날로부터 몇 년 이내, 또는 주행거리 몇 km까지는 무상으로 수리를 해주는 항목들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 차를 구입한 후에 무상으로 수리(A/S)를 받기 위해 자동차 정비소에서 점검을 하였는데, A/S를 해줄 수 있는 주행거리를 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계기판에 나온 주행거리와 실제 주행거리가 다른 것이었습니다. 우리에게 차를 판 사람이 계기판 주행거리를 작게 나오도록 소위 미터기를 조작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우선 ‘내용증명’을 차를 판 사람에게 보내도록 지시를 하였습니다. 내용증명이란 법률서식으로 법적인 절차를 밟기 전에 미리 알아야할 내용을 통보해 주는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이런 내용으로 편지를 보내는 것이지요.
“귀하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로 시작을 합니다. 그리고 일전에 판 자동차의 주행거리를 계기판에서 조작을 한 것이 발견되었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그 때문에 자동차 판매대금을 실제 받을 수 있는 금액보다 많이 받았기 때문에 그 차액을 돌려주든지, 아니면 환불해주고 자동차를 되돌려 받으라는 통보를 합니다. 최악의 경우 마지막에는,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을 경우에는 형사고발을 하거나 법적인 단계를 밟을 것이므로, 신속한 조치 및 연락을 기다립니다.”라는 문구를 넣어 공신력 있는 문서를 만들어 상대방에게 발송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제가 법적으로 해결하겠다고 덤벼드는 것은 아닙니다. 정말 불쌍한 사람에게는 당연히 긍휼을 베풀어야지요. 그러나 위의 경우와 같이 질이 좋지 않은 사람을 대할 때는 우선 ‘내용증명’과 같은 법적인 첫 단계를 밟아놓고 일을 진행해야 정당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제 생각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만일 그 때에 제가 돈을 제대로 받아내지 못하면, 미터기를 조작하는 악한 행동을 한 사람에게는 제가 착한 목사가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결국 교회에 손해를 입히는 나쁜 목사가 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교회 재정에 손해를 입히면서 악한 사람에게 돈을 더 주고, 저는 착한 목사가 된다면, 그것은 착한 목사가 아니라 제 직무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지요. 그런 식의 착한 목사가 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과연 ‘착하다’는 말의 정의를 여러분들은 어떻게 내리고 계십니까? 미가서 6:8은 “무엇이 착한 일인지를 주님께서 이미 말씀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공의를 실천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라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