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의 반대말은 “당연함” (대양주 가사원장 강승찬 목사님 글 요약)
감사는 목회 현장에서 붙잡아야 할 중요한 단어 중 하나입니다. 또한 우리의 가정과 일상을 행복하게 만드는 중요한 단어이기도 합니다. 마음이 닫힌 VIP들에게 마음을 열게 하는 열쇠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난 주간에 있었던 감사한 일을 한 가지씩 나누겠습니다”하고 목장모임에서 나눔의 시간을 시작합니다.
그런데 코로나 재난시대를 맞이하여 감사의 고백이 쉽지 않습니다. 감사하고 싶은데 성도들이 직장을 잃기도 하고, 대면예배를 드릴 수가 없는 상황이 되거나 시시각각 변하는 코로나 바이러스 재확산 소식과 정부의 방역 방침의 변화로 인해 스트레스가 더 심해져서 그런지 한 주간의 목회현장을 되돌아보면 감사의 흔적이 좀처럼 보이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감사라는 단어는 모두 알고 있지만 감사를 삶에 적용하며 산다는 것이 쉽지 않은 시대입니다.
감사의 반대말이 무엇일까요? 불평일까요? 원망일까요? 아니면 무관심일까요? 기도의 자리에서 감사의 반대말은 ‘당연한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식사대접을 받게 되면 누구나 대접하는 사람에게 고맙다고 말하면서 감사를 표현하지만, 날마다 밥 해주는 아내에게 날마다 고맙다고 고백하는 사람이 몇 사람이나 있을까요? 아내에게 진정으로 감사하지 못하는 이유는 아내가 밥 해주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우리가 감사를 상실해 버린 이유는 ‘당연함’ 때문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이 ‘당연함’을 ‘특별함’으로 바꾸어야 일상에서 감사하는 기적이 일어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당연함을 보석 같은 특별함으로 바꾸기 위해서 우리는 항상 주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시선으로 삶을 관찰하는 습관을 가져야 함을 우리는 목회 현장에서 배우고 있습니다.
불평과 원망은 주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못하는 불신앙에서 발생하지만, 감사는 주님의 주권을 인정하게 하고 우리의 믿음이 성장하고 성숙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또한 감사는 우리를 영적으로 깨어있게 하여 분별력을 갖게 합니다. 다니엘은 감사를 통해 늘 깨어 있었습니다. 초대교회 교부인 크리소스톰은 “죄 중에 가장 큰 죄는 감사하지 못하는 죄”라고 말했고, 마르틴 루터는 “마귀는 항상 원망하고 불평할 뿐, 마귀의 세계에는 절대 감사가 없다.”고 고백했습니다.
결국 감사를 잃어버렸다는 것은 사단이 원하는 불평을 선택했다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 불평은 나를 영적으로 잠들게 하고 깨어있지 못하고 영적 게으름에 빠진 내 모습을 반영하는 것에 불과한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큰 황소를 제물로 드리는 것보다 진정한 감사를 제물로 드리는 것이 하나님이 더 기뻐하신다(시 69:30-31)는 시편기자의 고백처럼, 감사가 우리 인격에 체질화되어 당연함을 특별함으로 바꾸어 목장모임 때마다 감사를 더 많이 고백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를 고백하는 성도들과 목장모임이 하나 둘 더 늘어간다면 코로나 재난 시대에 그 어떤 위기의 순간에도 믿음을 지키며 교회의 존재목적을 위해 헌신하는 성도들이 늘어날 것이고, 가정교회는 건강하게 세워질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힘든 상황일수록 상황을 잘 분별하고 감사로 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지혜를 주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주시기를 간절히 소망해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