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는 삼생을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살 소망이 있습니다.
주위에서 어르신들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는 마음 아픈 소식을 접할 때마다 늘 두 가지 마음이 생깁니다. 하나는 더 이상 고통이 없는 하늘나라로 잘 가셨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어르신들을 떠나보내는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특히 연로하셔서 기력이 없으시거나 오랫동안 질병으로 고생하신 경우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95세가 넘으신 아버님을 모시고 있을 때 점점 노쇠해 가시는 모습을 볼 때마다, 저는 두 가지 마음을 가졌었습니다. 거동을 못 하시고 거의 온종일 누워계시며 죽을 받아 드시고, 나중에는 식사도 못 하시고 링거를 맞고 계셨습니다. 병원을 가서 치료하실 일은 아니고, 집에서 돌봐드리기에는 전문적인 실력이 필요한 일이기 때문에 마지막 몇 달 동안은 요양센터에 모시고 거의 매일 방문하였습니다.
떠나시기 며칠 전에는 아버님을 방문하여 빨대로 물을 드시도록 도와드렸는데 빨대를 빠는 일조차 힘들어하셨습니다. 부득이 주사기로 물을 입 안에 넣어드리면서 이런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더 회복이 되지 않는다면 고통 없이 하나님 품에 안기시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요?”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아버님이 우리 곁에 조금 더 계셨으면…’ 하는 것이 저의 마음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자신의 갈등을 표현한 말씀이 생각납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훨씬 더 나으나, 내가 육신으로 남아있는 것이 여러분의 발전과 믿음의 기쁨을 더하기 위하여 여러분 모두와 함께 머물러 있어야 할 것으로 압니다.”(빌립보서 1:23-24) 그는 이 두 사이에 끼어 있다고 표현하였습니다. 즉 죽어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더 좋은데, 육신을 입고 살아가면 보람된 일을 할 수 있으니, 자신이 어느 쪽을 택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부모님을 떠나보내는 자녀들의 마음이 모두 이와 같을 것입니다. 아무리 연세가 많아도 부모님이 우리 곁을 떠나는 것은 마음 아픈 일입니다. 더 이상 곁에서 모습을 볼 수 없고 대화를 나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좀 더 잘해드리지 못한 아쉬움도 있겠지요. 때로는 평소에 바라시던 것이 이루어지는 모습을 보지 못하고 떠나시는 것에 대해 안타까움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도 우리에게는 산 소망이 있으니 감사한 일입니다. 우리에게는 어머니의 태중에서 일생(一生)을, 이 세상에서 이생(二生)을 지낼 뿐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살 삼생(三生)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의 삶이 ‘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 집착하거나 이 세상에 대하여 허무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삼생을 소망으로 가지고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의 삶을, 삼생을 위하여 준비하는 삶으로 살 수 있습니다.
더구나 우리는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민족이요, 왕의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국민이요,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어둠에서 불러내어 그의 놀라운 빛 가운데로 인도하신 분의 업적을”(베드로전서 2:9) 온 세상 사람들에게 선포하기 위하여, 우리는 이 땅에 출장을 나온 것입니다. 물론 출장비는 출장을 보내신 하나님께서 모두 책임을 져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모두가 이 세상 사람들을 위한 영적 지도자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이 믿음을 가지고 자기 자신을 잘 살피고 하나님의 양떼를 잘 보살피는 행복한제자교회 공동체의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